증인의 아름다운 삶
사진 한 장의 추억 . . . .
누군 가를 기억하고 추억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귀중한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과 영혼을 위한 신앙에 관한 이웃 이라면 더더욱 아름답다.
교회 설립 40주년을 기념하는 날에 내 일생을 통해서 영원이 기억될 참 좋은 친구로부터 편지 한통이 배달 되었다. 이렇게 특별히 기억 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본 교회가 처음으로 시작이 되던 그 첫 주일 날 우리 부부와 함께 단 세 명 이서 기도하며 교회를 시작하게 된 감격과 만남의 기쁨을 함께했던 그 21살의 여인 이었다
사람은 역사를 만들면서 그 역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특별히 자기가 만든 그 아름다운 역사를 증거 하면서 증인의 삶을 살아 간다는 사실은 얼마나 값지고 귀한 삶인가?
부활하신 예수님도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되라고 부탁하셨다
편지를 읽어가면서 감격하고 감사했던 사실은 그 어린 청순한 시절의 그 여인이 40 여년의세월 들을 살아 오면서 그 때 그 순간에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를 지금 까지도 변함 없이 모시고 사는 아름다운 기독인 신앙 인의 성공적인 삶을 그녀는 물론 온 가족이 아름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이 되고 있다. . .
친애하는 제일침례교회 형제 자매 님 들 안녕 하세요?
저는 서해원 목사님, 사모님 셋 이서 처음으로 설립 예배를 드렸던 오경숙 입니다.
어느 주일 날 친구와 함께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미국인 갈보리 침례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있던 중 그 교회 미국인 담임 목사 님께서 저에게 오늘부터 우리 교회 아래 층에서 한국인 교회가 시작이 된다고 하시면서 지금 아래 층에 한국인 목사 님이 계시니 내려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눈이 동그래 져서 아래 층에 내려간 저를 반갑게 마지 해 주시던 목사 님과 사모님의 모습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40년 이라고 하네요. (중략)
딸과도 같았던 저를 늘 사랑해 주셨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으로 전 도를 하셔서 놀랍게 부흥하던 교회를 바라 보면서 저는 늘 감탄을 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저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근무 지를 옮겨 다녀야 했고 목사 님과 정든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지금은 딸과 아들 남매를 둔 여섯 명의 손자 손녀들의 할머니가 되었답니다. 몸은 멀리 있어도 늘 교회의 소식을 전해 들을 때 마다 우리 교회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설립 때부터 목사 님과 교회를 함께 섬겨 오시고 계신 여러 교우님 들을 생각 하면서 늘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중략)
저는 지금 남편의 근무 지인 평택에 살고 있으며 한국인 시온성 교회의 영어 부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의 남편도 한국 생활을 아주 좋아하고 있으며 이 번 기회에 조국인 한국에 대해서도 다시 많이 배워가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4년 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 가게 되며 그 때 다시 스프링스를 방문해서 여러 분들을 뵐 예정입니다. 다시 뵐 때까지 모두들 건강히 주님의 축복 안에서 행복 하세요.
설립 40주년을 다시 축하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설립 일들을 마지 하세요.
오경숙 드림
서재에 간직해 오던 40년이 지난 오래 된 사진첩에서 단 한 장 뿐인 흑백 사진 한 장을 찾아 냈다. 오경숙 이의 사진 이었다. 아름다운 역사와 그것을 증거 하는 참으로 귀한 증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 이었다. 추억은 이래서 아름다운가 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증인의 삶을 앞으로도 계속 살아 주기를 바라며 그녀와 그 가정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한다
서해원 목사
친애하는 제일침례교회 형제 자매 님 들 안녕 하세요?
저는 서해원 목사님, 사모님 셋 이서 처음으로 설립 예배를 드렸던 오경숙 입니다.
어느 주일 날 친구와 함께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미국인 갈보리 침례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있던 중 그 교회 미국인 담임 목사 님께서 저에게 오늘부터 우리 교회 아래 층에서 한국인 교회가 시작이 된다고 하시면서 지금 아래 층에 한국인 목사 님이 계시니 내려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눈이 동그래 져서 아래 층에 내려간 저를 반갑게 마지 해 주시던 목사 님과 사모님의 모습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40년 이라고 하네요. (중략)
딸과도 같았던 저를 늘 사랑해 주셨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으로 전 도를 하셔서 놀랍게 부흥하던 교회를 바라 보면서 저는 늘 감탄을 했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저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근무 지를 옮겨 다녀야 했고 목사 님과 정든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지금은 딸과 아들 남매를 둔 여섯 명의 손자 손녀들의 할머니가 되었답니다. 몸은 멀리 있어도 늘 교회의 소식을 전해 들을 때 마다 우리 교회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설립 때부터 목사 님과 교회를 함께 섬겨 오시고 계신 여러 교우님 들을 생각 하면서 늘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중략)
저는 지금 남편의 근무 지인 평택에 살고 있으며 한국인 시온성 교회의 영어 부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의 남편도 한국 생활을 아주 좋아하고 있으며 이 번 기회에 조국인 한국에 대해서도 다시 많이 배워가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4년 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 가게 되며 그 때 다시 스프링스를 방문해서 여러 분들을 뵐 예정입니다. 다시 뵐 때까지 모두들 건강히 주님의 축복 안에서 행복 하세요.
설립 40주년을 다시 축하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설립 일들을 마지 하세요.
오경숙 드림
서재에 간직해 오던 40년이 지난 오래 된 사진첩에서 단 한 장 뿐인 흑백 사진 한 장을 찾아 냈다. 오경숙 이의 사진 이었다. 아름다운 역사와 그것을 증거 하는 참으로 귀한 증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 이었다. 추억은 이래서 아름다운가 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증인의 삶을 앞으로도 계속 살아 주기를 바라며 그녀와 그 가정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한다
서해원 목사

경숙자매님, 반갑습니다. 4년이 긴 시긴이 될 수도 있겠지만 40년이 어제같듯 눈 한번 꿈쩍하면 되겠죠?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답글삭제